만 12살, 원래 우리가 익숙한 나이로 14살이 된 자폐 소녀, 우리 딸 초은이. 정말 많이 컸다. 초은이가 5살쯤 되었을 때 내가 꿈꾸었던 초은이의 미래는 자폐에서 벗어난 정상적으로 자란 아이의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초은이는 반드시 자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치료센터에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모두 나의 무지에서 비롯한 헛된 바람이었다.

자폐는 장애이기 때문에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발달장애는 말 그대로 장애이기 때문에 완치의 개념이 없다. 일부에서 사람들이 자기가 자폐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자신은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비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기이거나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평생 발달장애 치료 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가 상당한 발달을 이루거나 엄청난 기능적인 향상을 보인 경우 자신이 자폐를 치료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이는 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입시학원 선생들이 자신이 학생을 서울대에 보냈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생이 잘 가르친 것도 있겠지만 사실 학생이 서울대에 간 것은 그 학생의 자질과 노력 덕분이다. 자폐의 경우 상당한 발달을 이루거나 기능적 향상을 했다고 해도 완치 개념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기능이 아주 뛰어난 자폐인들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자폐 진단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아이들의 경우 실제로는 최초 진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폐에는 완치, 치료 개념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폐를 치료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돈을 투입하고 있는 걸까?

그 이면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고 싶은 부모의 간절함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초은이를 치료해 보겠다고 돈도 많이 쓰고, 그 돈도 모자라서 대출을 받아서 돈을 쏟아부어 본 적이 있다. 물론 초은이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자폐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자폐에서 “치료”라는 단어 사용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단어 사용은 심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배격한다.

초은이가 어렸을 때는 언어치료사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요즘에는 공식적으로 언어재활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언어재활”이란 표현보다 “언어치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의 사용은 사람의 인식과 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주는지,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주는지에 그 방향성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은 엇갈리지만 언어와 사고는 떨어질 수 없는 한 덩어리이다.

AIT, 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청각통합훈련 역시 “베라르 치료”라는 말로 많이 불리고 있는데, 나는 이 표현 역시 매우 싫어한다. 이 표현은 베라르 박사가 개발한 청각통합훈련을 받으면 무언가가 완치가 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베라르 박사의 훈련 방법이 미국으로 알려지기 전에 프랑스에서 이 훈련 방법을 실시하던 베라르 박사는 Berard Methods라는 이름으로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 자폐연구소(Autism Research Institute)가 미 훈련 방법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국에 Berard Methods가 소개되었다.

자폐연구소의 버나드 림란드 박사는 베라르 박사를 미국으로 초청해서 Berard Methods와 관련된 연구와 세미나를 진행했고, 이로 인해서 미국에서 Berard Methods가 알려지고, 확산되기 시작했다.

버나드 림란드 박사와 이 훈련 방식에 대한 공식적인 네이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이란 명식을 베라르 박사에게 제안했고, 이때 이후로 AIT, Auditory Integraion Training 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명칭에서 보는 것처럼 자폐연구소의 버나드 림란드 박사도 AIT가 Training, 훈련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 AIT를 가르쳐 주었던 로잘리 세뮤어 여사 역시 이런 말을 많이 강조했다.

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is a traing, not a therapy.

그런에 우리는 왜 “치료”라는 단어 사용을 계속하고 있는지 참 희한하다.

베라르 박사가 개발한 AIT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자폐 분야와 부모들 사이에서 아직도 치료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는 것은 자폐의 완치 개념, 치료 개념에 아직도 상당 부분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폐는 완치와 치료 개념이 없다.

완치도 안되고, 치료도 할 수 없다면 아이에게 시간, 노력, 돈을 쓰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기능적인 면에서 “천지 차이”와 같은 엄청난 격차를 보이기도 한다. 우영우는 실재하지 않지만 우영우와 버금가는 기능을 보이는 자폐인도 있고, 돌잡이보다 못한 기능을 보이는 자폐인도 존재한다.

자폐라는 본질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자폐인의 기능은 지속적인 교육, 중재, 재활을 통해서 향상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드물지만 교육, 중재, 재활 없이 시간이 지나서 기능이 향상되는 자폐인들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교육이 자폐인들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아무리 중재를 하고, 교육을 해도 기능적 향상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참 슬픈 일이다. 이에 대해서 코네티컷 대학의 드보라 페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It all depends on the child.

모든 것은 아이에게 달렸다. 결국 기능적으로 향상이 가능한 아이와 그렇지 못할 아이가 있다는 솔직한 말이다. 매우 슬프고 운명론적인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학자의 양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모든 것이 아이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초은이가 평생 한 마디도 못하고 살줄 알았다. 초은이가 의미 있는 말을 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많이 기다렸고, 결국 초은이는 서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많이 늦었지만 우리에겐 기적 같은 일이다. 또 초은이가 미래에 어떤 변화와 기능적 향상을 보여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부모로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 부모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