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커피를 한 잔 내린다. 내가 마시려고 내렸는데, 아내가 와서 뺏어 마신다. 나는 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 정도 마시는 거 같다. 술 담배 같은 별다른 기호 식품이 없다 보니 느는 게 커피밖에 없다.
사춘기
지난 며칠 나의 관심사는 사춘기였다. 나는 사춘기가 좀 늦게 왔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애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그 이야기를 고등학생이 돼서야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얼마나 느렸으면…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리 어머니보다 키가 작았다. 152cm 정도 되는 아담한 우리 어머니. 그런데 중학교 때 나는 어머니 보다 작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확 커버렸다. 중학교에 한참을 올려다보던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길가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마주친 적이 있는데, 내가 그 친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는데, 사춘기가 얼마나 늦게 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인 것 같다.
요즘 애들은 빠르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여자아이들의 사춘기를 잘 모른다. 그러니 아내에게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큰 딸이 사춘기가 일찍 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사실 걱정은 초은이의 사춘기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 초은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아내와 나는 부모로서 초은이를 잘 도와줄 수 있을까? 누구나 다 겪는 사춘기인데, 초은이에게는 좀 더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폐아를 키워보면 안다. 쉽게 지나가는 일도 없고,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지나는 날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겪게 될 사춘기가 벌써 걱정이다.
아이들 교육
또 다른 관심은 교육이다. 초은이야 좀 특별한 교육을 하지만 첫째, 막내에 대한 교육 고민이다.
요 며칠 생각을 해보니 탁월한 결과를 만드는 교육을 할 생각을 갖는 것은 욕심인 것 같다. 부모도 탁월하게 살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 그 수준을 바라는 건 무리다. 아이들이 부모만큼만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 아이들의 삶에는 자폐는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자폐는 유전적 원인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니 딸들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겠다고 하면 그게 걱정이다.
요즘 학생부 종합 전형을 대폭 줄이고, 정시 위주의 입시를 도입한다는 청와대의 발표와 함께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당연히 불안하다. 입시 제도가 매일 밥 먹듯 바뀌니 혼란은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폐 중재던 입시던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입시가 대수인지 잘 모르겠다. 대학을 가던, 명문 대학을 가던, 아니면 대학을 가지 말던,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능력과 자질 역시 공부와 무관하지는 않다.
시골이라 교육 여건이 도시 같지 않은 게 사실이긴 하다. 내가 영문과 전공을 했다는 걸 안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기 자식 영어 과외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시골의 교육 여건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 시골에는 사교육이 제로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학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 입시까지 커버해줄 수 있는 수준을 갖춘 사교육 전문가는 아예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문제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조금씩 커가면서 그런 게 불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성실히 돕고, 눈감아줄 부분은 확실히 눈감아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예상이 된다.
주일 새벽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