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 내용은 학자들의 객관적인 통계적 결과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다. 초은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면 지난 11년 동안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다. 첫 번째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아내가 말하는 나, 초은아빠는

차가운 사람

이다.

1단계: 무관심

모든 자폐 영아가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 초은이는 첫돌이 되기 전까지 매우 키우기 쉬운 아이였다. 당시 아내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나는 논문을 쓰고 있었다. 직장도 동시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집에 늦게 들어왔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초은이는 거실 아기 침대에서 혼자 잤다. 나는 소파에 누워 초은이 옆에서 자곤 했는데, 초은이가 배고 고프다고 울면 분유를 타서 먹였다. 초은이는 분유도 잘 먹고, 트림도 잘하고 투정 없이 다시 잠에 들었다. 참 키우기 편한 아이였다.

평일에 출근을 하지 않으면 난 집에서 거의 잠을 잤다.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카시트에 앉혀서 잘 다녔다. 나는 그냥 내 할 일에 바쁘고, 피곤해서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다.

2단계: 초은이 이해하고 이해하기

시간이 흐르고, 초은이가 말을 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내 눈에 초은이는 자폐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자폐아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검사를 하고,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면서 초은이가 자폐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초은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는 ‘이해’는 초은이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초은이가 일부러 상동 행동을 하거나 수많은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5,6세의 정상 발달 아동이 고의로 거실 바닥에 물을 쏟아버린다면 부모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무서운 말투로 혼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이가 잘 이해하도록 잘 타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초은이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초은이는 아빠가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잘못을 해도 그게 왜 잘못된 행동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정상 발달 아동과 똑같이 대하겠는가? 초은이를 위한 맞춤식 교육이 필요했다.

그런 교육의 상당한 부분에는 이해가 필요했다. 초은이가 상동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초은이가 소리를 지르는 이유. 초은이가 코를 풀지 못하는 이유, 초은이가 편식을 하는 이유 등 수도 없는 이유를 이해하고 분석해서 초은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특별히 당시 초은이는 말귀를 거의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을 효과적으로 써야 했다.

어찌 보면 그때는 초은이에게 정말 부드럽게 대했던 것 같다. 반면 정상적으로 잘 자라는 첫째에게는 가슴을 후벼파는 말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첫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왜 꼭 말을 해도 그렇게 사람 마음을 후벼파는 말을 해?! 초은이한테는 안 그러면서!

내가 대답했다.

너랑 초은이는 다르잖아! 초은이는 말을 못 알아듣잖아…

3단계: 요즘… 잔소리꾼

초은이가 11살이 된 지금 나는 잔소리꾼이 되었다. 예전처럼 초은이를 부드럽게 대해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나는 잔소리꾼, 훈련 조교에 가깝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초은이가 이제 거의 다 알아듣기 때문이다.

말을 알아들으니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초은이는 사고뭉치이다. 뭐 엄청나게 많은 사고를 치는 아이는 아니지만 자폐아 초은이의 행동 스펙트럼은 정상 아동과 많이 다르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그런 청개구리이다.

한 겨울에는 눈이 오면 빙판이 되기 일쑤였다. 초은이는 그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 놀이하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제법 따뜻하다. 며칠 전 아침에 초은이랑 산책을 나갔다. 배수구에 물이 위에만 살짝 살얼음이 꼈다. 그걸 밟으면 발이 빠져서 신발이 젖는 걸 자기도 뻔히 알면서 초은이는 그걸 발로 깬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정! 초! 은!

나는 초은이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내는 왜 초은이에게 소리를 지르냐고 따진다.

하지 말라는 걸 하는데 그럼 지켜만 보냐!

앞으로 나의 잔소리는 더 심해질 것 같다. 원래 남자가 나이 들어서 말이 많아지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진다던데…

가족들한테 미움받을까 걱정이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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