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꽉 찬 10년은 되지 않았다. 초은이가 2010년 생이니 아직 꽉 찬 9년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나라 나이로 초은이는 10살. 그러니 그냥 편하게 10년 차라고 하자. 지난 10년간 정말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너무 빨리 후다닥 지나가버린 10년.
초은이가 어렸을 때는 그냥 귀여운 아기. 말이 느린 아기라고 생각했다.
마냥 귀여운 아이였는데. 옛날 사진을 들춰보았다. 이런 사진이 있다. 왼쪽 사진은 멀쩡한데, 오른쪽 사진은 확실히 시각 추구를 하고 있다. 그때는 이게 그런 건지 몰랐다.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항상 노력하지만 부족한 아빠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어렸을 때는 희망을 가졌다. 어쩌면 정상적인 발달을 할지도 몰라…
평창으로 이사 온 후 초은이는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한 달쯤 전이었나? 대형 사고를 하나 쳤다. 아내와 2층 서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던 거 같은데, 초은이가 그새 사고를 쳤다. 가위로 자기 머리를 잘라 논 것이다.
원래 이렇게 봐줄만했는데… 머리를 하도 이상하게 잘라놔서 도대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바리깡으로 그냥 다 밀어버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가 직접 초은이 머리를 밀었다. 도저히 머리카락을 살릴 수 없었다. 초은이 머리를 밀던 날. 내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아빠가 딸아이 머리를 밀까? 아들도 아니고, 여자애 머리를 빡빡 미는데 마음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요즘 이렇게 까까중으로 평창을 누비고 있다. 초은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아들인 줄 알고. 몇 번 봤던 분들은 애 머리를 왜 그렇게 잘랐나고 깜짝 놀라며 묻곤 한다. 그래도 내가 마음이 조금 나아졌는지 이렇게 이런 이야기도 여기에 쓴다. 아무튼 이건 정말 큰 사건이었다.
자폐 아동을 키운다는 건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이다. 물론 아이들마다 기능의 수준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삶의 무게도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 끼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블로그를 통해서 만나는 다른 자폐 아동 부모님들. 또한 AIT를 하면서 만나는 다른 부모님들… 말은 안 해도 서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초은이를 10년이나 키운 지금도 하루하루 긴장 속에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내와 내가 서로 의지하고 힘과 마음을 합해서 살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평창에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시골에 와서 경제적으로 걱정이 되는 부분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항상 내가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참 좋다. 아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있는 이 환경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0살이 된 자폐 아동 초은이는 요즘 의문문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초은아 뭐 먹을래?”라고 물으면, 보통 “뭐”라고 말을 따라 하곤 했다. 요즘에는 “피자”라고 적절한 대답을 하곤 한다. 정말 느린 아이이다. 그래도 무발화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 10살이 된 지금은 치료가 아닌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초은이에게 교육은 정상 아동의 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초은이에게 맞는 교육이 뭔지 항상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 블로그 통계를 보면, 블로그 글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정보를 찾아 들어오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자폐 아동을 키우는 내 마음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폐 관련 연구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글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런 글들을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뜩 내 마음을 쏟아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쏟아 놓을까? 내가 쏟아 놓을 곳은 여기밖에 없다. 사실 내 마음을 너무 쏟아놓으면 내 속 마음을 다 들켜버릴 것 같아 살짝 두려운 마음도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도 아니라고 으레 짐작하기도 한다. 암튼 그래도 오늘은 마음속 이야기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긴장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10살 먹은 초은이가 5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귀엽기도 하고, 그 모습에 활짝 미소를 짓기도 한다. 초은이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초은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외로울 틈이 없이 살고 있다. 초은이 덕분에 아내와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데 전념하다 보니 하루 종일 지지고 볶고, 외로움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다. 오히려 외로움을 느껴보고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10살 자폐 아동을 키우는 아빠 정록엽. 오늘도 이렇게 살고 있다. 아침이다. 평화로는 봉평의 아침이 참 좋다.
오늘 하루도 지지고 볶고 힘들겠지만 힘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