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은이 어렸을 때 사진이다. 컴퓨터에 모아놓은 수많은 사진들을 보면 이런 사진들이 많다. 어렸을 때 초은이는 카메라를 잘 쳐다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사진들 대부분이 이렇다. 다른 데 쳐다보기…

즉, 엄마 아빠와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했다. 혼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러도 얼굴을 돌려보지 않고, 돌아봐도 “네”라고 답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그게 청각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청각적인 문제란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이 듣는 방식으로 그 청각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Ringling College of Art & Design에 재학 중인 Alexander Bernard와 Marisabel Fernandez가 만든 단편 영화 <Listen>은 자폐 아동의 청각적인 문제를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물리적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소리를 집중해서 듣지 못한다. 초은이가 어렸을 때 카메라를 바라보지 못했던 이유, 엄마 아빠와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했던 이유, 그리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자폐인이자 동물학과 교수인 템플 그랜딘의 자신의 책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3장 감각 기관이 전달하는 신호가 다르다”에서 자신 역시 청각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할 때, 나는 한 사람의 말만 걸러내어 듣지를 못했다. 내 귀는 모든 소리를 똑같은 양으로 받아들이는 마이크와 비슷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귀는 고도로 선택적인 마이크처럼 목표한 사람의 목소리만 걸러 듣는다. 그러나 나는 시끄러운 곳에서는 주변에서 나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을 가려낼 수가 없다. 어릴 때는 친척들이 여럿 모여 북적대는 곳에 가면 견디질 못하고 자제력을 잃어 울컥 짜증을 폭발시키곤 했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81쪽

즉, 스스로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 교수가 자신의 청각적인 문제를 경험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149763411002065

2012년 2월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라는 학술지에 실린 케이트 오코너 박사의 논문이다. 연구는 아니고 여러 연구를 리뷰한 논문이다. 논문의 제목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청각 처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논문의 기본 주장은 자폐와 청각 문제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살펴보았을 때, 자폐인들에게는 아주 광범위하고 심각한 청각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이 논문은 케이트 오코너 박사가 석사 학위 공부를 하면서 쓴 논문인데, 2012년 다시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케이트 오코너 박사가 이 논문을 쓸 당시 그녀는 이미 박사였다. 찾아보니 면역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인데, 이미 박사 학위를 받은 상태에서 의사소통장애를 더 공부하려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아무튼 그녀의 석사학위 과정 중 쓴 논문이 PDF로 다운 가능해서 아래 링크를 첨부한다.

http://citeseerx.ist.psu.edu/viewdoc/download?doi=10.1.1.839.6413&rep=rep1&type=pdf



captured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149763411002065

71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인데, 이 초록을 보면 대략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은 사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읽기에는 무척 어렵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위 초록을 번역해보면 이렇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개인들은 청각적 정보를 정확하게 처리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 논문에 우리는 자폐인들의 청각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행동주의적, 신경생리학적, 뇌과학적 연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펴본 논문들은 이 분야에서 지난 20년간 학술지를 통해 발표된 가장 높은 수준의 연구들이다. 이 연구들을 통해 자폐인들이 행동주의적, 신경생리학적으로 청각 정보를 매우 다르게 처리한다는 상당한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폐인들이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의 이상성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음의 높낮이나 크기를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운율과 같은 복잡한 청각 정보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종합해봤을 때, 자폐인들의 청각 처리 문제는 복잡한 청각 정보를 처리할 때 더 심하게 나타나며, 다른 소리보다 사람의 말소리를 처리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자폐 아동들에게는 청각적 중재가 꼭 필요하다.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