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니 엄청 귀엽다. 우리 초은이. 저 시절에는 우리 초은이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우리 아이. 당시에는 그런 행동이 자폐의 증상 중 하나라는 것도 몰랐고, “호명 반응”이란 말도 생소했다. 물론 “호명 반응”이란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런 말을 누가 사용을 하는가? 이름 부르면 돌아보고, “네”, “왜?”, “아빠 나 불렀어?”라고 대답하는 게 정상인데, 그걸 못하니 마음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진을 찍은 곳은 인천의 외할머니 댁이다. 외할머니 댁 가까이에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있다. 외할머니네 가면 나는 초은이를 데리고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자주 갔다. 가서 초은이 좋아하는 간식 사주려고. 초은이는 유난히 빅파이를 좋아했다. 전시 중인 야외 흔들의자가 있어서 초은이를 내 품에 안고 초은이에게 말했다.

“초은아. 이게 뭐야? 이건 빅파이야. 아빠 따라 해봐. 빅! 파! 이!”

하지만 초은이에게서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한 글자라도 말하면 주려고 했는데, 아무리 시켜도 입도 뻥끗하지 않아서 한참 시간이 지나고 그냥 주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초은이가 그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기도 말하고 싶은데, 아빠가 계속 시키고 빅파이도 주지 않았으니. 내 마음이 힘든 거보다 초은이 마음 답답한 게 더 컸을 것 같다.

이건 최근 초은이. ㅋㅋ 초은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렸을 때는 엄청 깜찍했는데, 10살이 된 지금은 끔찍해졌다. ㅋㅋ 그래도 내 눈에는 귀요미. 초은이는 이제 제법 자기표현을 한다.

도대체 뭐가 달라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평창에 이사 온 후 표현이 더 좋아졌다. 그래도 부모 욕심은 끝이 없다. 초은이가 자기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듣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직도 그걸 못한다. 스무 살에는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기대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에게 호명 반응이 없다면

호명 반응이 없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많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호명 반응, 무발화 문제 때문에 2년 정도 센터에서 하자는 대로 치료를 진행했다. 서울, 경기권에서는 유명한 곳에 거의 찾아가 본 것 같다. 하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 아니. 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시작한 게 행동치료학을 직접 공부한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초은이를 이렇게 가르쳤다. 초은이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초은아”라고 부른다. 그러고 나서 내가 직접 초은이 머리를 잡고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초은이가 좋아하는 멘토스를 줬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거지 같은 방법인지?! 그런데 당시에 효과가 있었다. 초은이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황당하다.

그러다가 만난 AIT 청각통합훈련. 초은이가 입이 열었다. 그 당시에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AIT 전문가가 되고 말았다. 이 두 가지 방법 말고는 호명 반응을 위해서 특별히 한 건 없었던 것 같다. 생활 속에서 초은이를 가르쳤던 작은 것들, 엄청나게 바꾼 식단이 조금씩 초은이를 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AIT 청각통합훈련은 첫걸음

나는 개인적으로 AIT 청각통합훈련이 발달지연이나 발달장애 문제의 첫 단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호명 반응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소리를 의미 있는 단위로 해석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이러한 청각정보처리장애Auditory Processing Disorder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과학적으로는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시냅스 연결이 정상 아동들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에게는 가장 타당하게 다가왔다.

소리를 의미 있는 단위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름으로 해석되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중재를 시작하기 전에 청각통합을 해주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초은이가 어렸을 때 나는 AIT라는 것 자체를 몰랐다. 치료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 AIT를 하는 전문가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없었다. 그리고 공부를 해보니 AIT가 ABA나 언어치료 같은 메이저 중재법도 아니다. 그래서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AIT를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초은이가 어렸을 때 AIT 청각통합훈련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그러니까 20개월 이전에 AIT 청각통합훈련을 하고 아주 많이 좋아진 아이들이 있다. 그 부모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기분이 좋아서 설명하는데, 들으면서 나는 배가 아팠다. 배가 아프지… 배가 아픈 법이다.

시간이야 되돌릴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현재 초은이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아이의 호명 반응 문제로, 혹은 발화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선 AIT 청각통합훈련을 한 번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제대로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중재의 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AIT 청각통합훈련은 좋은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문의하면 된다.

혹자는 발달지연이나 발달장애의 모든 원인이 청각적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들 많이 키워본 부모들은 다 알고 있다. 아이의 발달 상의 문제는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고, 또한 아이마다 그 원인이 다를 수 있으며, 나타나는 증상의 양상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획일적인 중재법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초은이 같은 여자 자폐아동을 키워보니 주변의 다른 남자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또한 자폐 관련 연구에서 설명하는 자폐아동의 전형적 모습이 초은이와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괴리감을 느낄 때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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