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은이는 어려서 말을 하지 않는 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한 자폐아동이 자주 놀러왔다. 어머니께서는 교회에서 구역장으로 섬기고 계셨는데, 같은 구역의 한 성도의 아이가 자폐아였던 것이다. 그 분은 남편과 이혼을 하셨고, 혼자 아이 둘을 키우셨다. 경제활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구역장인 우리 어머니께서 그 아이를 봐주셨다. 그 아이를 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리 집에 놀러오면 무조건 주방으로 달려가서 젓가락을 가져갔다. 방에 앉아서 하염없이 젓가락을 두드리고, 소리를 내며 혼자 노는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아이의 모습과 초은이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에 초은이가 자폐아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냥 늦터지는 아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초은이는 많은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 말을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독특한 행동(상동행동, 당시에는 이런 개념을 전혀 몰랐다)을 했다. 그래서 우선 동네 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다 진전이 없자 용하다는 곳,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몇 시간 차타고 이동하는 것은 별 일이 아니었다. 비싼 수업료도 많이 썼다. 경제적인 압박이 되었지만 그래도 자식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두 번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토마티스, 베라르, 청지각 훈련… 이런 단어를 아내에게 듣게 되었다. 음악을 들으면 귀가 뚫려 말을 할 수 있다는 애기었다.
말도 안되!
이게 내 반응이었다. 솔직히 너무 많이 의심이 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초은이에게 청지각 훈련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보기로 했다.
토마티스 혹은 베라르 치료가 과학적 연구 논문이 있을까?
밤을 새서 인터넷을 뒤졌고, 토마티스 훈련과 베라르 훈련이 주장하는 원리를 이해했고, 관련 논문도 찾을 수 있었다. 두 훈련을 비교했을 때 베라르 관련 논문은 다량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 토마티스 관련 연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격도 베라르 훈련이 더 쌌다. 그래서 아내와 베라르 치료를 시켜보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찾아간 분당의 베라르 연구소. 무뚜뚝해 보이는 소장님을 만났다. 사실 이미 마음을 먹고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소장님 말씀에 설득을 당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전날 공부하고 궁금했던 점을 여쭈었다. 그리고 바로 초은이 훈련을 시작했다. 초은이는 낯선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30분 동안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어야했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기다리는데 초은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소장님께 완전히 맡기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기다렸다. 30분이 지나고 들어가보니 초은이 눈가에 눈물이 가득차있었다. 그렇게 3일쯤 지나고, 적응되었는지 훈련을 잘 마쳤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생겼다. 초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었다. 완전무발화… 그런데 훈련을 하는 도중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래 동영상이다.
남들이 보면 이게 무슨 말이야 하겠지만 4년 이상 초은이가 말하기를 기다렸던 나와 아내에게 이 순간은 엄청난 순간이었다.
드디어 초은이가 입을 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온갖 치료실을 다녀도 한 마디를 못하던 초은이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을 한 것이다.
물!
당시의 감동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분당 베라르 연구소 소장님께 너무 감사함을 느꼈다. 그 이후 초은이는 조금씩 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수용언어처리 능력도 향상되기 시작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초은이는 또래처럼 수려한 언어사용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최근에 평창에 와서는 화용적 언어사용이 많이 늘어 가끔 나와 아내를 놀래키기도 한다.
몇 년 전, 나는
좀더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 AIT 청각통합훈련을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게됐고, 이어듀케이터earducator를 만든 로잘리 세뮤어Rosalie Seymour가 이를 디지털화한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왼쪽에 있는 이어듀케이터는 비싸고, 무겁다. 오른쪽에 있는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가볍고, 훈련비용도 낮출 수 있다. 이 둘은 같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는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전문가가 없었다. 내가 로잘리 세뮤어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교육을 받고, 국내 최초로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AIT 청각통합훈련은 얼마나 검증된 과학적인 훈련일까? 그리 많이 검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ABA 응용행동분석은 어떤까? 많이 검증되었다. 그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역사에서 비롯된다. ABA는 20세기 초중반을 주름잡았던 행동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가 길고, 당연히 관련된 연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AIT 청각통합훈련은 20세기 말이 되서야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그 연구가 당연히 많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ABA가 자폐를 치료하는가? 아니다. 세상에 자폐를 치료하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걸 알면 당연히 노벨상 감이다.
내가 청각통합훈련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경험 때문이다. 초은이가 태어나서 입을 연 그 경험. 목포의 한 아이가 AIT 훈련 이후 10개월이 지나고 완전 다른 아이가 되어 너무 행복하다는 엄마의 전화. AIT 훈련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한 20대 여성의 전화. 물론 나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고 별 변화를 느끼지 못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연락을 하지 않은 분들은 다 그런 분들이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AIT 청각통합훈련이 자폐아동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AIT 서비스를 제공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이게 그 정도의 수입을 내게 주지 못한다. 그리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글을 한 번 쓰고 싶었다.
다른 모든 중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청각통합훈련을 해야한다. 자폐인이나 발달지연을 가지고 있는 아동들은 감각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Orntiz 박사가 1985년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Psychiatry에 기고한 논문도 자폐아동의 감각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런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도 경험적으로 아이에게 감각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청각적 문제는 소리를 제대로 듣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다른 중재를 시작하기 전에 청각통합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 옳다.
나는 AIT 청각통합훈련이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제대로된 시작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좋은 훈련이다. 자폐아동에게 혹은 발달지연아동에게 청각적인 문제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그 분석에 합당한 중재를 실시해야 한다.
아이의 발달 문제로 고민이라면, 호명반응이 없어 고민이라면,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진다면, 눈맞춤이 잘 되지 않은다면,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센터에 가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중재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청각통합훈련을 강력하게 권한다. 분명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