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제발 초은이가 고기능 자폐였으면 좋겠다.
언어 사용을 할 수 있는 고기능 자폐, 언어 사용을 할 수 없는 저기능 자폐라는 분류를 흔히 사용한다. 자폐아더라도 이왕이면 고기능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저기능 자폐아라는 사실을 직면하면 부모는 두 번 죽는 꼴이 되고 만다. 나 역시 그랬다. 기본적으로 底보다는 高가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주변에서 들어보면 고기능 아이들은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내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한 이야기들이다.
저기능 자폐인들은 어느 정도까지 언어를 발달시킬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우리 초은이는 무발화였던 5살의 시간을 지나 지금 10살이라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요즘 초은이는 말이 어마 무시하게 늘었다. 말이 어마 무시하게 늘었다는 건 문장 구사가 잘 된다는 게 아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많이 좋아졌는데, 첫째는 발음의 측면이고, 둘째는 말할 수 있는 단어의 수 증가이다.
요즘 눈에 띄게 발음이 좋아진다. 예를 들어, 얼마 전만 해도 “피자”라는 단어의 발음이 매우 불안했는데, 요즘 발음이 매우 정확해졌다. 또한 수용적인 면에서만 알고 있던 단어들이 요즘에는 입에 잘 붙어서 밖으로 많이 나온다. 또한 말을 하면서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자랑을 하듯이 웃으며 만족감을 표시한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우리 큰 딸이 더 많은 노력을 해주고 있다. 초은이 보다 두 살 많은 언니 채은이는 초은이를 부모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평생 함께 자란 언니이기 때문일까? 초은이 입장을 더 잘 이해하고, 말을 더 잘 끌어내고, 대화한다. 웬만한 언어치료사는 저리 가라 수준이다. 착한 언니 덕분에 초은이도 말에 대한 재미를 더욱 붙이는 것 같다. 요즘 조잘조잘 말이 엄청나게 많은 39개월 막내는 초은이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그렇게 수다스러운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말이 늘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이렇게 초은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런 기대감이 마음속에 생긴다.
언젠가 초은이랑 속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초은이가 스무 살이 되면 좀 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봤던 다큐에서 보니 중학교 때는 말을 잘 하지 못했던 자폐 남학생이 성인이 되어서 말을 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분명 그 친구는 저기능으로 분류되는 자폐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언어적 의사소통이 꽤 잘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초은이도 앞으로 더 언어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안 가본 길이니 모르겠지만 다방면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력해보면 결국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좀 더 해보자. 초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