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 플로어타임 공부를 하기 위해서 구매한 책 <Engaging Autism>을 열심히 읽고 있다. 뭐. 시간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읽는다기보다는 틈틈이 읽는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화장실에서, 애들 잠자리에 눕혀놓고 옆에서 읽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Stanley I. Greenspan 박사가 매우 폭넓은 접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내가 느낀 Greenspan 박사의 DIR 플로어타임은 하나의 중재법이라기보다는 포괄적 접근이라는 생각이 든다. 플로어타임이라는 하나의 중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이미 존재했던 다양한 중재를 아이의 필요에 맞춰서 개별화하고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DIR 플로어타임의 핵심인 것 같다.

아무튼 그런데.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읽어서 공유하고자 포스팅을 한다. 나는 초은이를 고쳐보겠다고 대구사이버대학교 행동치료학과에 편입을 했었다. 무사히 졸업을 했고, 학교에서 배우고 공부한 ABA 기법을 적용해서 집에서 초은이를 가르쳤다.

초은이의 부족한 점을 고려하고, 집중적으로 함께 공부를 했더니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내가 운이 없었던 건지, 만났던 치료사 선생님들이 실력이 없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센터에서 2년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인사를 초은이는 아빠 엄마랑 같이 ABA를 하면서 하루 만에 해결했다. 뭐 그렇게 행동주의적인 양육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많이들 과학적이라고 하길래 무작정 따라갔던 것 같기도 하다.

Greemspan 박사는 <Engaging Autism> 251-251쪽에서 ABA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The most basic difference between the major approaches is in their goals. Developmental approaches such as DIR/Floortime strive to help children build healthy foundations for relating, communicating, and thinking. In Contrast, behavioral approaches (the most intensive of which is ABA-Discrete Trial, developed by Ivar Lovaas) work on changing surface behaviors with structured tasks. In the most recent study of behavoiral approaches-the only one to use a true clinical trial design(randomly assigning children to different interventions)-Tristram Smith (a colleague of Lovaas) showed that these approaches produced only modest gains in educational areas and little to no gains in emotional and social areas, compared to control groups. And even in terms of the structured educational gains, only 13 percent of the children studied achieved the high-level educational outcomes that were claimed for a much higher percentage in earlier studies (see Smith, Groen, and Wynn, 2000, in References). Also, a review in 2004 of all studies on ABA approaches by Victoris Shea showed that the original claims for their effectiveness have not been replicated (Shea, 2004, in References).


Engaging Autism, p. 251-252

주류 접근법들의 대부분의 차이는 그 목적에 있다. DIR 플로어타임과 같은 발달주의적 접근법은 관계, 의사소통, 사고의 건강한 기반을 기르도록 아동을 돕는데 집중한다. 대조적으로, 이바 로바스가 개발한 ABA와 같은 행동주의적 접근법은 구조화된 활동을 통해 표면적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집중한다. 최근 행동주의적 접근 연구 중 아동들에게 임의적으로 다른 중재를 제공하는 임상실험은 단 하나가 존재했다. 이 실험에서 로바스의 동료인 트리스트람 스미스는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ABA를 실시한 아동들은 교육적인 면에서 약간의 발전이 있었지만 감정적, 사회적 면에서는 그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구조적인 학습의 측면에서도 오직 13퍼센트의 아동만이 높은 수준의 교육적 결과를 성취했는데, 이는 기존 연구의 결과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또한 2004년 빅토리아 쉬어가 ABA에 관련한 모든 연구를 리뷰하였는데, ABA가 기존에 주장했던 효과는 반복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내 블로그의 과거 글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행동주의적으로 초은이를 지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찰할 수 있는 행동에만 집중을 한다는 점에서 ABA는 확실한 한계가 있다. 초은이가 성장할수록, 그리고 사춘기라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아내와 나는 감정적인 면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하지만 ABA에서 감정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 요인이다. ABA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폐에 대해서 우리가 어느 것 하나 확언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과 접근법이 존중되어야 한다.

Greenspan 박사의 <Engaging Autism>을 읽으면서 또 하나 충격적으로 다가온 게 있다. Greenspan 박사의 플로어타임은 중재의 첫 단계를 “안정적, 보호적 관계”라고 주장한다. 즉, 가족 안에서 아동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외부 요인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재의 첫 단계라고 말한다. 매우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기본이라고 생각했지 이런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읽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얼마나 초은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아빠인가? 아이들은 아빠 엄마와 있을 때 항상 보호를 받고 있나고 느끼는가? 혹시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혼날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는가?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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