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폐 아동을 위한 우리나라 복지의 현실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초은이가 어렸을 때, 자폐 진단과 상관없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바우처를 신청해서 사용한 적이 없다. 발달적 문제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만약에 치료에 성공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아이에게 불필요한 꼬리표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내는 초은이의 이름으로 어떤 바우처도 받아 사용해본 적이 없다. 형편이 넉넉해서 그랬던 게 아니다. 비싼 치료비가 부담 되기도 했지만 초은이에게 그런 기록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몇 해 전 장애인 등록을 하면서 의미는 없어졌다. 그냥 바우처 다 받아쓸 걸 그랬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갈대 같고 간사하다.
얼마 전 바뀐 장애인 등록법에 의해 초은이는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폐성 장애 아동이다. 장애인 등록카드에 보니 급수가 아닌 장애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데 왜 이렇게 명칭 바꾸는데 수많은 예산을 사용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예산을 그냥 장애인을 위해 쓰지.
아무튼 장애인 등록카드가 생기면서 우리 가족은 몇 가지 혜택을 보고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 50% 감면, 공영주차장 요금 면제 혹은 50% 감면, 국립 혹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원, 박물관 등 입장료 면제 혹은 감면이 대표적이다. 장애인 등록카드만 있으면 이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장애인 하이패스 단말기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를 진입할 때는 하이패스를 이용하고, 나올 때는 직원이 있는 게이트를 이용해서 할인을 받았다. 자동차에 장애인 전용 하이패스 단말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톨게이트 직원이 강원도에서 장애인 전용 하이패스 단말기를 무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신청을 했다.
이렇게 생긴 단말기이다. 신청 후 이틀 만에 집으로 단말기가 배송되었고, 면사무소에 초은이와 함께 가서 초은이 지문을 등록했다. 그리고 차에 장착해서 사용을 했는데, 삼 일 만에 떼려쳤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모든 선이 유선으로 되어 있고, 지문 인식기 라인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뒷좌석에 앉는 초은이를 항상 앞으로 불러야 한다. 그것도 시동을 켤 때마다. 장애인 본인이 운전을 한다면 운전석 가까운 곳에 두고 사용하면 그럭저럭 편할 것 같긴 한데, 뒷좌석에 앉는 초은이에게 “초은아 이것 좀 해줘” 계속 말하는 것도, 그리고 초은이 입장에서는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앞 좌석 쪽으로 몸을 내밀어 지문 인증을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요즘에는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하이패스 단말기도 있는데, 장애인 하이패스 단말기는 그런 기종이 전혀 없다. 또한 인증 방법도 지문 인식으로 국한되었고, 또한 그 지문 인식 장비 역시 유선이라 불편함이 이로 말할 수 없다. 이 지문 인증 장비라도 무선이 지원이 되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에서 사용하는 페이스 ID처럼 하이패스 단말기가 페이스 ID만 지원해줘도, 초은이가 좀 더 편하게 인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불만이 생겨서 그냥 치워버렸다. 그냥 기존처럼 이용하려고 한다.
장애 아동 수당
장애 아동 수당이라는 게 있는지도 사실 몰랐다. 선배 부모님의 댓글을 통해서 장애 아동 수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면사무소에 가본 김에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장애 아동 수당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장애 아동 수당은 4만 원이 지급된다고 한다. 모든 장애 아동에게 지급되는 것은 아니고,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지급이 될 수도 있고, 지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확인해봤다. 확인 결과 초은이는 장애 아동 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 내 소득 때문이란다. 나는 소득이 많지 않다. 황당…
4만 원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국가에서 매월 20만 원씩 받고 있다. 막내 효은이의 양육수당과 아동수당인 것 같다. 각 10만 원씩 매월 20만 원 통장으로 차곡차곡 들어오고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물론 통장에 입금되었다는 알림을 들으면 기분은 좋다.
그런데 장애 아동 수당이 4만 원? 이마저 무조건 지급이 아닌 소득에 따른 선별적 지급. 내가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던 가볍든 간에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장애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4만 원? 그리고 선별적 지급?
요즘에 수당이 참 많다. 아동 수당, 청년 수당 등등… 대부분 무조건 지급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듯하다. 그게 잘못되거나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더 보듬어야 할 장애인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물론 앞에서 말한 고속도로 통행요금 할인, 공영주차장 면제 할인 등으로 누리는 특권이 많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 아동 수당 4만 원이라는 이야기에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매우 개인적이고 사회적 참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의가 어떻게 흘러가든 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니다. 초은이는 내가 잘 키우고, 교육하고, 보듬어 살아갈 몫이다. 국가가 어떻게 해줄 거라고 기대는 전혀 갖지 않는다. 가져 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갖지도 않을 계획이다.
장애인 하이패스 단말기를 써보고, 장애 아동 수당 이야기를 면사무소에서 듣고 나서 그냥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