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2일

오늘은 오전부터 아쿠아플라넷 일산에 갔다. 보통 첫째가 학교에서 돌아온 방과 후 시간에 많이 갔었는데, 오늘은 첫째가 감기로 목이 너무 아파서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일찍 놀러갔다.

일찍 아쿠아플라넷에 가니 다양한 공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대형 수조관 속에서 아쿠아리스트들이 멋진 공연을 하는 것도 보고, 다양한 동물들이 조련사의 지시를 따라 공연을 하는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늘 본 여러 공연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본 공연은 바로 바다코끼리의 공연이었다.

바로 요 놈이다. 덩치가 나보다 더 큰 녀석들인데, 조련사의 지시를 따라 눕기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고, 물 속에서 엔젤링(Angel Ring)을 만들기도 했다. 조련사의 지시를 따라 여러가지 행동을 수행하는 바다코끼리를 보며 아내가 내게 물었다.

와~ 정말 신기하다. 근데 제내들이 어떻게 저런 걸 할 수 있지?

행동치료학을 공부하고 이번에 졸업하는 나에게 이 질문은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행동의 원리를 사용하는 거지!

조련사는 자신의 허리 한쪽에 바구니를 메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바다코끼리가 너무 좋아하는 생선이 들어있다. 여러 번의 지시와 강화가 반복되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바다코끼리는 조작적 행동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바다코끼리가 저렇게 잘하면, 그럼 우리 초은이도 어떤 행동이든 다 할 수 있겠네?

아내가 말했다.

아니.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설명해 주었다.

저기 바다코끼리를 봐. 코끼리는 계속 조련사만 보고 있잖아. 초은이는 어때?

초은이를 비롯한 많은 자폐아들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가장 분명한 이유 중에 하나는 사람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바다코끼리에게 있어서 맛있는 생선은 정말 최고 중 최고이다. 바다코끼리가 맛있는 생선을 갖고 있는 조련사에게 집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실 나는 이 원리를 이미 오래 전에 깨달았다. 이 원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24시간 동안 초은이의 관심을 내게 끄는 것은 쉽지 않다.

첫째로, 여러가지 삶의 환경과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초은이가 좋아하고, 초은이의 관심을 끌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하루 종일 초은이 눈 앞에서 그것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 이유. 이 문제가 내가 생각하는 정말 포인트 중의 포인트인데, 아이의 관심을 끄는 활동이나 물건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게 어렵다. 초은이는 어떤 놀이나 활동, 장난감에 관심이 있더가도 시간이 조금 흐르고 익숙해 지면 지루함은 느낀다. 사실 이건 초은이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특성은 권태, 게으름, 지루함이다. 이건 초은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일 매일 어떤 새로운 활동이나 놀이, 사물이 초은이의 관심을 끄는데 도움이 될지 고민한다.

오늘은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매달고 달렸다. 나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고, 초은이는 뒤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즐거웠나 보다. 바로 이때가 학습의 기회이다. 나는 초은이에게 트레일러와 관련된 단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찬스를 얻었다. 초은이는 아빠가 또 트레일러는 태워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내 눈과 입을 바라보면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내가하는 말을 따라하면서 그 단어들을 배우기도 한다.

내일도 트레일러에 초은이를 태워서 달릴 것이다. 초은이가 이 활동을 언제까지 좋아할 지는 모르지만 이 활동이 초은이가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을 갖게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018년 12월 18일

초은이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는 편이다. 2년 전과 달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있어도 내가 요구를 하면 바로 들어주는 편이다. 2년 전에는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여러가지 힌트를 동시에 제공해야 했지만 지금은 말만 듣고도 요구사항을 잘 실행하는 편이다. 오랜 만에 지난 글을 읽어보니 초은이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 내딸.

집에서 하는 A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