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었던 거 같다. 여러 센터를 다니고 있었다. 2010년 생인 초은이. 2015년이니 우리 나이로 여섯 살이었다. 초은이의 발달 상의 문제에 대해서 늦게 알아차렸던 나는 네 살 때부터 초은이를 센터에 데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수업을 받았고, 전혀 변화가 없었다. 여섯 살 때부터는 하루에 4-6 시간 정도 수업을 받았고, 그래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 당시 딱 하나 변했던 것이 오줌 기저귀를 졸업한 것이다.

같이 센터에 다니던 엄마가 아내에게 베라르라는 게 있다고 말을 해주었다. 아내는 베라르, 토마티스라는 게 있는데 음악을 듣고 아이들이 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음악을 듣고 애가 말을 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게 나의 첫 반응이었다. 그 이야기를 아내와 나눈 후 난 컴퓨터에 앉아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국내 자료는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한 정보이긴 했다. 특히, 소리를 무서워하고, 소리를 듣긴 하지만 못 알아듣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는 어쩔 수 없이 공감이 되었다. 아이들이 소리를 의미 있는 단위로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발달하지 못하는 설명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이게 과학적인 근거가 있기는 한 거야?

당시 상당히 젊었던 나는 과학 타령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구글에 가서 베라르, 토마티스의 효과와 관련된 연구 논문들이 있는지 찾아봤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런 방법들이 효과가 있다 효과가 없다는 결론보다는 이 방법들을 검증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베라르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토마티스 관련해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분당에 있는 베라르 연구소에 찾아갔다. 당시 조금 무뚝뚝해 보였던 소장님. 아직도 소장님의 그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나는 이미 찾아보고 할 목적으로 왔었기 때문에 그날로 훈련을 시작했다. 초은이는 자폐이고, 말도 한 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검사 없이 바로 진행했다.

인천에서 분당까지 10일 동안 매일 가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특히 베라르의 특성상 하루 두 번 훈련의 사이에 3시간의 텀이 필요해서 밖에서 초은이를 데리고 3시간을 버티는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초은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초은이는 시작한 지 5일쯤 되던 날 갑자기 말을 했다.

“물!”

여섯 살이 된 초은이에게 처음 들어본 말소리였다.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을 보면서 ”물!“이라고 태어나서 처음 말을 한 것이다. 당시 초은이의 말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난 베라르 덕분에 아이가 말을 하게 된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돌아보면 당시 초은이가 말을 시작하게 된 것은 베라르 덕분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전에 2년 동안 열심히 센터를 다닌 효과가 베라르 훈련을 하던 중 아다리가 맞아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아이를 진공상태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특정 원인으로 아이가 좋아지는지 확인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적인 문제에 대한 중재는 종합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아무튼 초은이의 변화가 있을 당시 난 대구사이버대학교 행동치료학과에 편입해서 ABA 공부를 하고 있었고, 수강 중이었던 <감각통합 이론> 수업에서도 AIT 청각통합훈련에 대해서 듣게 됐다. 나도 공부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던 중 로잘리 세뮤어라는 분을 알게 됐다.

로잘리 세뮤어는 AIT 장비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어듀케아터라는 기계를 만든 분이다. 베라르 박사가 개발했던 오디오키네트론이 여러 가지 이유로 널리 사용되지 못하면서 로잘리 세뮤어가 이어듀케이터를 개발하게 됐고, 베라르 박사가 인정하면서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로잘리 세뮤어는 이어듀케이터나 오디오키네트론과 같은 거대한 기계로 청각통합훈련을 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에 누가 CD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가? 컴퓨터화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장소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로잘리 세뮤어는 생각했고, 아일랜드 소재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 데이타웍스에 의뢰해 필터드 사운드 트리이닝이란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이어듀케이터를 컴퓨터화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 프로그램이 소개되지 않았고, 내가 배워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로잘리 세뮤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여차여차해서 연락드렸다. 내가 배워보고 싶다. 그렇게 말씀드렸고, 로잘리 세뮤어 선생님의 도움으로 AIT를 공부하게 됐다. 그 당시 2015년에도 이미 70이 넘은 나이었지만 열심히 가르쳐주셨다. 교재를 메일로 보내고, 책도 국제특송으로 보내주셨다. 서로 시간을 맞추어 skype 영상 세미나를 하면서 강의도 해주고 질문도 받아주셨다. 그렇게 몇 달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

나는 이렇게 AIT 청각통합훈련를 하게 되었다. 2015년 말에 공부를 시작해서 2016년 봄부터 초은이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과 함께 청각통합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아이들도 많았지만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부모님들도 있었다. 나는 이 훈련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각적 통합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변화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초은이 아버님은 이걸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라고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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