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은이는 4살때 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정말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초은이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손끌기를 했다. 손을 잡고 자기가 원하는 대상이 있는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게 초은이가 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의사소통처럼 느껴졌다.
말 못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
당시 나는 초은이가 자폐아일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가끔 봐주시던 자폐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고, 나는 그 아이를 자주 봤고, 그 아이의 모습이 자폐라고 생각했다. 즉, 그 아이의 모습과 자폐를 동일시 했던 것이다.
그 아이의 모습과 초은이의 모습은 매우 달랐다. 그래서 초은이는 자폐아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자폐는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즉, 자폐인의 모습은 저마다 각약각색이며 증상의 정도와 그 다양성이 매우 넓게 분포되어 한 가지 모습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중학생 당시 자폐 소년 한 명만 보고 그게 자폐라고 잘못 생각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4살인데 말을 못하면 자폐일까? 전부는 아니겠지만 4살에 말을 못하면 자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수 있다. 언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말이라는 것이 인간의 고유 특성으로 본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노출된 모국어를 아무런 노력 없이 배우게 되는데 이를 언어적 능력(linguistic competence)라고 한다. 정상적인 발달을 보이는 아이들은 12개월이 되면 “엄마”, “까까” 등의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고, 24개월이 되면 문장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4살, 만 3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발달, 특히 언어적인 면에서 정상적인 발달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는 동시에, 호명반응도 약하고, 비언어적 의사소통 마저 약하다면 장차 자폐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말 못하는 아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우선 4살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보자. 첫 번째로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심리적인 충격을 받아서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인데, 심리적인 원인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본다는 것은 아이에게 기본적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말을 할 수 있는 아이인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감각적인 원인일 수 있다. 우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80% 이상이 감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감각, 즉 오감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아주 어린 나이에는 엄마가 안아주면 촉각적인 자극이 주어지고, 자연스럽게 촉각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누워있는 아기에게 부모가 “까꿍”하고 웃으며 말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청각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시각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감각통합의 대가 진 아이레스(Jean Ayres) 박사에 의하면 아이는 태어나서 24개월이 되면 오감을 어른들과 동일하게 사용하는 감각통합을 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자폐 아동을 비롯한 발달적인 문제를 보이는 아동의 경우 제대로 감각통합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각을 제대로 통합하지 않으면 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 영상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감각 세계를 묘사한 동영상이다.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감각 세계에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언어 습득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세 번째, 아이에게 청력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농아일 가능성이다. 이 경우는 확인하기 쉽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4살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면 두 번째 경우, 감각적 이상성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만약 아이가 소리를 듣는 것은 확실한데 호명반응이 약하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농아는 아닐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도 아니라면 발달적인 문제를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감각통합훈련는 어렵지 않다.
결국 아이들은 집중적으로 감각을 발달시켜 감각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나의 경우 초은이가 4살때 감각통합이란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다. 말 못했기 때문에 언어치료 수업에 아이를 들여보냈다. 하지만 접근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제대로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언어치료를 하는 것은 장님에게 사진을 보여주는 격이었다. 감각통합이란 개념을 알고난 후 초은이의 감각 발달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감각통합은 감각통합센터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통합센터에 가면 그네 타기, 트램폴린 타기, 공 던지기 등과 같은 고우수용감각, 촉각, 시각 등과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런 활동은 가정과 가까운 놀이터에서도 할 수 있다. 사실 아이들이 노는 시간 자체가 감각통합을 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충분히 많이 놀아주는 것 자체가 감각통합의 기회가 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감각통합에 도움이 된다.
다만 청각, 후각, 미각의 통합의 기회가 적은 편이다. 아이가 편식을 하는 경우 후각과 미각에 대한 자극이 매우 적을 수 있다. 다양한 식감과 맛을 가진 음식을 먹고, 다양한 냄새를 맡아보는 활동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청각은 청각통합훈련
청각적인 자극은 청각통합훈련(auditory integration training)을 통해서 제공할 수 있다. 청각통합훈련은 프랑스 이비인후과 의사였던 기 베라르(Guy Berard) 박사가 개발한 훈련이다. 이 훈련에 대해서는 소개한 글이 있으니 여기를 클릭해서 확인하면 된다.
초은이 역시 뒤늦게 이 훈련을 알게 되었다. 6살때 같은 센터를 다녔던 부모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음악을 듣고 아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었다. 나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련해서 연구들이 있는지 찾아보았고, 관련한 연구 논문들을 찾아볼 수 있어서 바로 다음날 센터로 찾아가서 초은이에게 청각통합훈련을 제공했다.
신기하게도 초은이는 훈련을 받던 중 말을 시작했고, 그 이후로 조금씩 언어적 발달을 하게 되었다. 좀 더 편하게 청각통합훈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베라르 박사와 평생 청각통합훈련을 연구했던 로잘리 세뮤어 여사가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잘리 세뮤어는 청각통합훈련에 널리 사용되었던 이어듀케이터(Earducator)를 개발했던 사람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이를 컴퓨터화해서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을 만든 것이다. 나는 로잘리 세뮤어 여사에게 연락을 했고, 그녀에고 교육을 받아 청각통합훈련 전문가가 되었다.
그후로 우리 초은이는 6개월에 한 번씩 청각통합훈련을 실시했고, 지난 8년여 동안 많은 부모님들도 나와 함께 청각통합훈련을 진행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에게 확정적이고 일관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노벨상 감이다. 더 좋은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통합이 되어있지 않은 아이들의 청각통합을 개선하여 전반적인 발달에 좋은 자극을 주는 훈련인 것은 분명하다.
만약 4살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해서 걱정이라면 우선 청각통합훈련을 해보길 권한다.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을 통해서 청각통합훈련을 하면 비용도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도 매우 적다. 나 역시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입장의 부모들에게 현실적인 비용으로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청각통합훈련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여기를 눌러서 문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