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생각을 암호화coding해서 화자와 청자가 의미를 주고받는 수단이다. 지금 내가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행동 역시 내 머릿속의 생각을 암호화해 글로 옮겨놓고, 독자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러니깐 지금보다 젊은 시절, 나는 이런 언어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고, 언어학으로 석사과정까지 공부를 마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허락된 언어적 능력Linguistic Competence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 초은이는 두 돌, 세 돌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어학을 공부한 나에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능력을 갖지 못한 아이가 있다는 것은 당시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암튼 나는 언어 자체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 보다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껏 석사 나부랭이 수준의 지식이지만 보통 사람보다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공부를 할 당시 언어학의 매력에 매료되어 즐겁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은 지금 돌아봐도 너무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그 덕분에 더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초은이를 키우면서 대구사이버대학교 행동치료학과에 편입해서 2년 동안 학사과정을 마쳤고, 그러면서 AIT 청각통합훈련을 접하고, 로잘리 세뮤어 여사에게 교육을 받고 AIT 전문가도 되었다. 물론 무슨 큰 돈벌이를 하려고 시작한 일들은 아니다. 다만 내 아이, 초은이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아빠가 되고 싶어서 공부했던 것이다.

필터드 사운드 트레이닝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님들께 AIT로 도움을 드리면서 나도 자연스레 자폐 치료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즉, 자폐 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인 동시에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매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많은 자폐 치료 전문가들을 접하게 되고 그들의 의견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자폐인은 언어를 구사하는 고기능high-functioning 자폐인과 저기능low-functioning 자폐인으로 나뉠 수 있다. 물론 누가 먼저 이런 구분을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명칭이 매우 기분 나쁜 명칭이기는 하다. 이 구분법이 보여주듯이 자폐와 언어문제는 매우 큰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DSM-5에서는 자폐의 본질적 특성을 사회적 의사소통의 부재에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자폐인들이 일반인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폐아동을 둔 부모들은 언어와 관련된 치료를 많이 아이들에게 제공하게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의 언어를 발달시키려고 노력한다. 부모들이 언어발달을 위해 많이 제공하는 훈련 방법으로는 언어치료, 감각통합훈련(AIT 청각통합훈련 포함), 행동분석적 언어치료, 생의학적 보조제 섭취 등이 있는 것 같다. 즉, 직접적으로 언어를 건드리는 중재와 다른 방법으로 언어발달을 돕는 우회적인 방법들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점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언어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초은이를 치료하면서 수많은 언어 관련 치료사들을 만나봤다. 치료와 상담과정에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분들은 내가 어떤 공부를 했던 사람인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그 분들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면 언어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금새 알 수 있다. 답답한 현실이다. 근복적 원리를 잘 알지 못하고 현상만 치료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현상만 가지고 치료를 해서 아이가 개선되는 황당한 일들도 많이 있다. 또한 근본적 원리를 잘 알고 있다고 해서 현상을 잘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그게 옳은 것인냥 부모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부모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부모들은 잘못된 정보나 지식으로 인해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방적 피해를 입게 된다. 나는 이게 문제라고 본다. 잘 모르는 것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

최근 내가 들었던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음소phonemes는 자음consonants과 모음vowels로 구성되는데, 어떤 전문가가 하는 말이,

각 음소가 차지하는 정확한 주파수 지대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의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자음은 125~500Hz, 대부분의 모음은 500~1,500Hz의 주파수를 갖는다.

답답했다.

우선, 각 음소가 차지하는 정확한 주파수 지대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의 의견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의 음성을 컴퓨터로 분석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음성분석에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Praat이다. 아래 링크를 확인하면 누구나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음성분석을 할 수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자폐분야 언어치료와 관련된 분이 계시다면 제발 다운 받아서 사용해보시고 음성학에 대한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갖길 부탁드린다.

http://www.fon.hum.uva.nl/praat/

이 것은 내가 “아빠”라고 녹음하고 Praat으로 그 소리를 분석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녹음하면 컴퓨터가 딱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음소가 보여주는 주파수에 대한 이견은 존재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확인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해서 이견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구글에 검색만 해보아도 각 음소가 어떤 주파로 구성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대부분의 자음은 125~500Hz, 대부분의 모음은 500~1,500Hz의 주파수를 갖지 않는다. 인간의 목소리는 단일 주파수를 갖지 않는다. 위에 있는 Praat 분석 사진을 다시 보자.

그 사진의 아랫부분을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이라고 부르는데, 그 안에 검정색이 진해게 나타난 부분들이 보인다. “아빠”라는 2음절의 소리를 녹음했는데, 왼쪽이 “아”, 오른쪽이 “빠”이다. 각 부분을 살펴보면 진한 4개의 띠를 이룬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걸 포만트formant라고 부른다. 컴퓨터에게 요구하면 이렇게 빨간점으로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 중 맨 아래를 F1, 그 다음은 F2, F3, F4, 이렇게 부른다. 일반적으로 F1과 F2만 보고도 각 음소를 구별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각 음소는 하나의 주파수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최소 4개의 주파수가 결합되어 하나의 음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주파들이 결합하는 소리를 듣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해석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것이다.

구글에서 검색한 이 사진을 다시 봐도 각 모음의 F1과 F2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F1과 F2의 차이값을 보여주고 있다. F3와 F4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F1과 F2만 보고도 어떤 소리인지 구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습이 필요하다.

여기까지이다. 답답한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이 답답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이 글을 쓰느라고 다시 예전에 공부했던 책들을 들쳐보고, 오랜만에 음성분석도 해보았다.

아쉬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듯이 자폐 치료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의 무지가 자폐아동과 부모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폐에 관한한 우리 모두가 선무당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이다. 자폐에 원인에 대해서도 아직도 아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문가일수록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 블로그를 통해 몇 년간 자폐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다. 나 역시 선무당이다. 앞으로 자폐와 관련된 글을 쓸때는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독단적인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