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 김미숙 주연 영화 <말아톤> 시작 장면을 보면 치료사가 어린 초원에게 사람의 감정을 그림과 이야기로 가르치려는 모습이 등장한다. 정상 발달을 이룬 사람들은 이런 표정에 대해서 따로 배우거나 공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폐 아동에게는 이런 방식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자폐 아동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전제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이 전제가 맞는 걸까?

우리 아내라면 이런 전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초은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행복과 슬픔을 느끼고, 가족들과 공감하기도 한다. 분위기 파악도 귀신같이 한다. 다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실시간 감정 공유와 감정 표현이 잘되지 않을 뿐이다.

https://pubmed.ncbi.nlm.nih.gov/32666690/

대화 시 자폐인들의 얼굴 표정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있다. 연구 대상자들은 9-16세의 청소년들이었고, 자폐인 20명과 정성 발달인 16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엄마와 10분간 대화를 했고, 그 후 연구 진행자들과 10분간 대화를 했다. 대화 내용은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대화를 할 수 있었으니 대부분 경증 자폐인이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두 대의 카메라가 대화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촬영했고, 기록된 영상은 자동화된 얼굴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분석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첫째, 자폐인들의 경우 대화를 하면서 웃는 경우가 정상 발달인들 보다 적었다. 둘째, 정상 발달인들은 대화를 하는 동안 대화 상대자와 거의 동일한 표정을 짓는데 반해, 자폐인들은 대화 상대자와 동일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정상 발달인들 보다 적었다. 셋째, 연구 진행자와 대화를 할 때보다 엄마와 대화를 할 때 자폐인들은 대화 상대자와 동일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연구를 리뷰한 조나단 모엔은 자폐인들이 대화 상대자와 동일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적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mismatched expressions”

자폐인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는 관점이 아니라 단순히 현상적으로 자폐인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얼굴 표정이 상대와 매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기술한 것이다. 나는 이런 단어 사용이 매우 객관적이라고 느껴졌다. 편견을 갖게 만들지 않는 언어 선택인 것 같다.

대조적으로 영화 <말아톤>은 편견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도입부도 그렇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많은 자폐인들을 정형화해 보여주려는 시도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폐 아동을 키우는, 혹은 발달 상의 문제가 보이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자폐라는 프레임을 만드는 편견에 매우 익숙한 것 같다.

“자폐아는 이렇데… 자폐아는 저렇데…”

이런 식으로 자폐에 대해서 정형화된 틀을 만들려고 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자폐인과 자폐 아동들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공통분모는 매우 넓고 광대하다. 나 역시 초은이가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자폐를 이해하려고 시도했었고, 그 편견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에 초은이가 제발 들어가지 않길 바랐었다.

하지만 초은이와 1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 보니 자폐라는 게 참 다이내믹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어쩌면 내가 초은이를 통해서 만나게 된 자폐라는 세계는 매우 작은 파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자폐 아동 부모가 경험하는 자폐는 어쩌면 내가 경험하는 것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나는 “자폐”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용어 자체가 편견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모두 편의상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