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저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아빠가 되고 싶어요.”

사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대화였다. 사실 아버지와 나는 서로에게 마음을 잘 표현해본 적이 없다. 서로 대화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한다”라는 말을 내가 잘 못했고, 아버지도 그랬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내게 문자를 보내셨다.

“사랑하는 아들시간 되면 전화”

엄청나게 충격적인 메시지였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한 번도 이런 표현을 쓰신 적이 없다. 나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당시 문자를 캡처해서 보관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좀 더 마음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된 것 같다.

좋은 아버지를 만난 건 어찌 보면 내겐 행운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처럼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는 항상 나를 믿어주셨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항상 일관되게. 모범생일 때도, 사춘기를 맞아 약간 비행청소년 행세를 했을 때도 항상 믿어주셨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고,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다. 내가 막상 부모가 돼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부모는 모두 자식에 대한 욕심을 갖고 산다.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당연히 참견하고 싶다. 사춘기 때 내가 방황했을 때 아버지는 분명 답답하고 마음이 힘드셨을 거다. 하지만 한 번 참견하지도 잔소리하지도 않으셨다. 분명 속으로 엄청나게 참으셨을 거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녀 교육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셨다.

물론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는 저마다 다른 철학과 인생관을 갖고 자녀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즉, 중심을 잡는 것이다. 그 중심을 잘 지키면 자녀는 안정감을 갖게 되고, 그 중심을 잃으면 자녀는 불안감을 느낀다.

나는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역시 중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가 중심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자폐라는 문제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흔들리고 방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자폐를 처음 만났을 때 많이 방황했다. 나에게 다가온 운명을 원망하기도 했고, 초은이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자폐가 무엇인지도, 자폐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러니 방황할 수밖에…

어떤 부모가 이게 좋다고 하면 쭈르륵 따라가서 그걸 하고, 저게 좋다고 하면 또 주르륵 따라가서 그걸 했다. 귀가 얇아지고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랬더니 초은이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었고, 답답했고 미칠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책과 강의를 통해서 배운 내용을 하나씩 실천했고, 초은이는 조금씩 변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중심을 잡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중심을 아주 잘 잡진 못했다. 새로운 상황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게으름 때문에 중심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중심을 더 잡으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 특별히 내 아이에게 무얼 해주어야 할지 모르는 부모가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자폐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폐 중재에 대해서 공부하고, 내 아이를 더 이해해서, 중심을 잡고 아이를 가르치라고. 그러면 부모는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다른 중재를 하겠지만 분명 아이는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팔랑귀가 되어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면 아이는 부모처럼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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