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이 질문을 했었고, 자폐아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 역시 이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 양육 태도가 잘못되었다면서 자신을 탓할 수도 있다.
초은이와 함께 처음으로 어떤 센터에 갔을 때, 상담을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자폐는 후천적인 거라고 말씀하셨다. 부모가 잘못 길러서 아이가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폐 관련 연구들을 많이 살펴보니 자폐가 후천적이라고 말하는 연구 결과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0년 5월에 발표된 이 연구 역시 자폐의 유전적 요인이 환경적 요인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https://pubmed.ncbi.nlm.nih.gov/32374377/
이 연구는 1992년부터 2008년 사이에 태어난 스웨덴 국적의 쌍둥이 37,958쌍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폐 발생의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확인했다. 연구진들은 출생 연도에 따라 이들을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출생 연도에 따라 자폐 발생의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차이가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결과는 매우 명료했다. 유전적 요인은 자폐 발생의 93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즉, 환경적 요인이 자폐 발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출생 연도에 따른 그룹을 분석해보니 시간에 지남에 따라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자폐 발생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예나 지금이나 자폐 발생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아이가 자폐아라면 부모가 양육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물론 7퍼센트의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 가족에 흐르는 유전자와 그 변이에 자폐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소개했던 것처럼, 남자는 여자보다 자폐를 발생시키는 유전자과 그 변이에 취약하다고 한다. 즉, 가족에게 자폐 발생과 관련 있는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아들일 경우 자폐로 태어날 가능성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반대로 여자아이가 자폐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 가족에 존재하는 자폐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와 그 변이가 매우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가족에게는 그 관련된 유전자가 상당히 많이 흐른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AIT를 하면서 많은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떤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신의 형이 자폐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평생 형을 보면서 자라왔고, 자폐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아보니 자폐 아동이라고 한다. 내가 당해본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놓인 분들을 많이 만나봤다.
유전적 요인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 첫째나 막내가 나중에 결혼에서 비슷한 일을 겪게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