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초은이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김밥 맛있겠다.

별 특별한 말, 고상한 말, 어려운 말도 아니지만 이 말은 이전에 했던 초은이의 말과 다르다.

김밥 맛있다.

초은이 입장에서 보면 추측을 나타내는 어미 “-겠-“을 사용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11살에 이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아내와 나는 초은이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었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많이 커서 어딜 가든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진 나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11살 답지 않은 말과 행동. 그래도 난 감사하다. 한 마디도 못해서 답답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용 됐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인간이란 원래 성급한 존재인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조금 하다가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는 게 보통 사람인 것 같다. 조금만 버티고, 좀 더 노력하면 금방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참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인간이다. 만약 이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엄청 훌륭한 인간일 것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보일 것이며, 돈도 많이 벌 것이다.

오늘 생각해보니 자폐 아동을 키우는 일도 기다리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떤 언어치료 선생님께 오랫동안 초은이를 맡긴 적이 있다. 당시 초은이는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터라 정말 답답하고 힘든 시기였다. 아무리 언어치료를 해도 초은이에게 변화가 없었다. 말도 못 알아듣고, 호명 반응도 안되고, 한 마디도 따라 하지 못했다. 내 마음은 조급해졌고, 더 좋은 선생님이 없는지, 다른 좋은 중재법이 없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더 과학적인 중재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더 좋은 선생님을 찾는 노력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자폐 아동을 키우는 입장에서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별히 아이가 어릴 때는 잘못해서 아이를 놓칠까 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발달 진행 상태에 대해서 너무 성급한 마음을 먹는 것은 때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중재를 규칙적으로 제공하면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어떤 중재든지 그 효과가 곧바로 나타날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우며, 요술을 부리듯이 자폐 아동을 갑자기 변신시키는 중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가 꾸준하게 노력하다 보면 특정할 수 없는 이유로 아이는 성장하는 것 같다.

초은이가 “김밥 맛있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다리는 것도 과학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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