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은이는 어려서 말을 한 마디도 못했다. 입 밖으로 처음 단어가 다온 나이가 우리 나이로 6살이었다. 처음으로 초은이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물”이라는 1음절 단어는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축복이었다.

초은이가 말을 한마디도 못할 때, 그런 고민을 했다.

우리 초은이는 정말 커서도 말 한 마디도 못할까?

그 두려움과 공포가 매우 컸다.

https://acamh.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cpp.13565

2022년 1월에 발표된 연구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Although language regression can be alarming, our findings confirm that its occurrence does not necessarily foreshadow worse developmental outcomes relative to those without regression. Although a discrepancy in age-equivalent communication skills may persist, this can be expected to be of less with rising average levels of skills.

언어 퇴보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연구는 언어 퇴보가 없는 집단과 비교했을 때 현재의 언어 퇴보가 미래의 더 심각한 발달상의 결과를 필연적으로 예측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연령에 맞는 의사소통 능력에서 격차는 지속되겠지만 이러한 격차는 전반적인 발달이 향상되기 때문에 그 격차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과거에 이런 도그마dogma가 있었다고 한다.

발달적 문제에 있어서 퇴행적 패턴은 더 나쁜 결과와 연관이 있다.

즉, 현재 자폐 아동의 발달상의 문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미래에 더 좋지 않은 예후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폐 아동이 보이는 여러 영역의 기술적 퇴보에 대해서 인류가 정확히 이해하는 부분은 매우 적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1750946714000750?via%3Dihub

2014년 연구는 발달 영역별 능력skills의 손실을 경험한 자폐 아동과 그렇지 않은 아동이 9세가 되었을 때 인지 기능과 자조 기능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즉, 현재 자폐 아동의 능력 손실이 미래의 발달 상황을 예측해 볼 수 있는 가늠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운명론적인 주장이다.

자폐 아동의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 나쁜 주장이다.

하지만 2022년 1월에 발표된 연구를 포함해서 최근 많은 연구들이 어린 시절의 능력의 손실이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UC Davis 정신의학교수인 Sally Ozonoff는 “최근 연구들이 퇴행적 패턴이 더 나쁜 결과와 연관 있다는 도그마에 사망선고를 내렸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Sally Ozonoff 교수는

아이가 발달 과정 중 퇴행적 패턴을 보인다면, 그것이 반드시 더 나쁜 예후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들이 알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2022년 1월 연구는 언어적인 면에서 퇴행적 패턴을 보이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매우 희망적이다.

https://acamh.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cpp.13565

이 연구는 영국 King’s College London 교수인 Andrew Pickles가 주도했는데, 피클스라는 이름이 참 재미있다.

http://www.asdpathways.ca/home

피클스 교수와 연구진들은 캐나다의 장기 연구인 Pathways in ASD에 등록된 408명의 자폐 아동 데이터를 연구했다. 아이들은 2-5세에 자폐 진단을 받았고, 평균적으로 6.6-10.7세에 다시 한번 자폐 진단을 확인했다. 이중 90명(22%)가 어린 시절 언어 퇴행을 경험했는데, 피클스 교수와 연구진은 “기존에 배웠던 단어 중 적어도 다섯 개의 단어를 손실했을 경우”를 언어 퇴행으로 정의했다.

연구진은 언어 퇴행을 보인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성별, 발작, 부모 학력, 가정 소득 등 건강과 인구통계학 상의 차이는 없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언어 발달은 집단과 상관없이 개인별로 상당한 차이가 보였다.

연구 결과 어린 시절 언어 퇴행을 경험했던 집단은 11세쯤 의사소통의 문제를 보이긴 했으나 나이가 들며 평균적으로 의사소통 능력이 더 향상되면서 어린 시절 언어 퇴행의 실질적 중요성은 크지 않은 것을 확인되었다.

캐나다 자폐인 자료에 등록되어 있는 90명에 대한 제한된 이야기이긴 하다. 또한 어렸을 때 언어적 퇴행을 경험했던 아이들에 제한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6살 때 처음으로 1음절 단어를 말한 우리 초은이는 언어적 퇴행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때 이후로 쭉 언어적으로 거북이 같지만 성장만 했다. 퇴행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

하지만 “기존에 배웠던 단어 중 적어도 다섯 개의 단어를 손실했을 경우”를 언어적 퇴행이라고 규정한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이 연구가 현재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되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하나의 연구가 절대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또한 연구에서도 자폐 아동이 자라서 보통 사람의 언어 구사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 언어적 퇴행을 보이더라도 성인이 되어서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출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초은이를 13년 키워보니 내 경험도 비슷한 것 같다. 지금 초은이가 말을 엄청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동네 바보 누나”처럼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동네 아저씨 말을 대놓고 씹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의사소통 능력이 어렸을 때보다 좋아졌고, 자기 원하는 것을 표현할 정도로 의사소통을 하니 부모로서 그냥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 역시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을 품고 살고 있다.

한 마디도 못할 때와 비교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말을 좀 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