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발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인지했을 때, 내 아이가 자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시작되었을 때, 무엇을 하든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부모 스스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혼란스럽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내 마음이 그랬다. 초은이에게 발달적인 문제가 확실히 있었지만 초은이는 자폐가 아닐 거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저 조금 느린 아이일 거라고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집에서 가까운 발달센터에서 일하는 원장님의 이야기도 들어봤고, 유명하다는 센터 원장님의 이야기도 들어봤고, 학문적인 권위가 있는 교수님들을 찾아가 우리 초은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그분들의 입을 통해서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초은이는 자폐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답정너. 답을 정해놓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듯싶다. 자폐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도 그랬을 것이다. 부모가 자기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발달적 문제를 치료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첫 번째 단계는 분명 객관적으로 아이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폐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는 이 미션 클리어가 참 어렵다. 힘들더라도 우선 아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조금 느린 아이일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정상적으로 발달하겠지’라는 식의 기대만으로는 아이의 발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현재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이 공부한 이론은 저마다 다르다. 발달심리학적 관점, 행동주의적 관점, 감각통합적 관점, 인지심리학적 관점 등 전문가들은 그들이 공부한 학문적 배경도 다르고, 발달적인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폐 아동을 처음 키우는 부모가 갖고 있지 않은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분명 자폐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다. 다양한 전문가들 와 대화를 통해서 부모는 배울 점이 있다.
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첫 번째, 우선 마음을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그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모두 옳은 이야기라고 볼 수도 없다. 때로는 과장하기도 하고, 센터 수업에 등록시키기 위한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아이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부모로서 내가 어떻게 변해야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혼자서 진리에 가까운 사고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스스로 온전히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 아집을 내려놓고 전문가와 대화를 통해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두 번째, 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와 가족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이다. 특히, 자폐는 아직 인류가 원인도 알지 못하고,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폐에 대해서 마치 온전한 이해를 가진 것처럼 말하는 전문가를 만난다면 오히려 의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전문가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그 이야기가 우리 아이와 가족의 현실에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문가가 정말 좋은 중재법을 제안한다고 해도, 그 비용이 우리 가족의 경제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부모는 현실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 없어서 아이에게 좋은 치료법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빚을 내서라도 아이에게 모두 해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빚을 내서 아이에게 제공할 만큼 엄청난 중재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빚을 내서 아이 치료에 투자하면 그 순간에는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자폐 아이와 사는 인생을 길게 보면 그 빚이 결국 나중에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세 번째, 스스로 아이 발달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자폐를 비롯한 발달적인 문제에 있어서 가장 좋은 중재는 “개별화된 중재”라고 수많은 중재 이론은 말한다. 즉, 아이의 필요에 맞는 중재 계획을 수립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개별화된 교육을 늘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다. 센터 선생님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수업을 하기 때문에 너무 바쁜 사람들이다. 어쩔 수 없이 매번 하는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아이를 위한 개별화를 디자인할 여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스스로 아이의 발달에 대해서, 자폐에 대해서, 교수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스스로 아이를 위한 맞춤형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주의한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