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월이 넘었던 것 같다. 입밖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던 초은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같은데, 심각한 문제라고 그때 생각하지 못했다. 한창 바쁘게 살던 나는

좀 늦은 애들도 있지. 내버려 둬. 알아서 잘 크겠지.

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당시 초은이와 눈을 마추고 노는 시간도 거의 없을 때였다. 하지만 40개월이 넘도록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불안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동내에서 가까운 발달센터를 알아봤고, 예약을 잡아서 찾아갔다. 물론 나는 그때 가지 않았다. 일하느라 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가 다녀오더니, 그날 밤 많이 울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나무랬다.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운다고. 아내 말이 센터 선생님이 아빠를 데리고 한 번 오라고 했단다. 그래서 다음 수업 때 초은이와 함께 센터를 찾았다.

낯선 환경이었다. 들어가니 안내 데스크가 있었고, 오전 일찍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경을 쓰신 선생님. 나보다 연배가 많이 높으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초은이, 아내, 나를 방으로 안내하셨다. 그 상황이 낯설었던 나는 그 방 바닥에 앉아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봤다.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버님은 초은이랑 잘 놀아주세요?

아니오. 나는 초은이랑 잘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었다. 아니. 나는 아예 애들이랑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아이들 좋아하는 놀이공원에 한 번 데리고 간 적이 없었다. 아니. 아이들과 주말에 어디에 놀러간 적도 없었다. 나는 주말에도 항상 일을 했다.

어머님 나가시고, 아버님과 초은이랑 같이 있어볼까요?

엄마가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초은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냥 우는 게 아니고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내가 달래보려고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가 어떤 아빠인지 잘 알게되었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바로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시간이 많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좋은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난 아직 좋은 아빠가 아닌 것 같다. 너무 부족하다.

불안정애착이라고 해요.

난생 처음 듣는 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초은이가 불안정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아, 엄마와 떨어지면 무서워한다는 애기였다.

불안정애착. 무슨 뜻이지?

사실 초은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자폐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청각통합훈련도 그렇고, 상동행동, 반향어, 감각통합, 생의학, 뭐 이런 말들. 예전에는 듣도보도 못했던 말들이다.

집에 돌아와서 불안정애착이 뭔지 찾아봤다. 글로 읽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찾다보니 안정애착과 불안정애착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니 좀 이해가 되었다. 아. 그런거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불안정애착이 우리 초은이의 당시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많은 것을 바꾸게 된 계기를 준 날임에는 분명하다.

초은이는 문제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40개월 까지 말 한 마디 못하는데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미쳤던 걸까? 40개월 되도록 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아이를 정상이라고 생각했다니?! 다른 부모들도 다 그럴까? 아니면 나만 그랬던 걸까?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데도 그냥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걸까?

센터에 처음 갔던 그날.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거였다.

아. 우리 초은이에게 문제가 있구나.

그리고 나에게도 문제가 있구나.

그걸 깨달은 날이었다. 내 눈을 가리고 있었던 무언가가 벗겨진 날이었다. 물론, 위에서도 말했지만 깨닫는다고 해서 쉽게 변할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센터라는 새로운 공간이 초은이, 아내, 그리고 내 삶에 들어왔다.

집에서 하는 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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