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 정의하는 것도 어렵고, 그 정의는 사람마다 상대적일 테니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고, 앞으로 생각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내 개똥철학을 써보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아버지 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핵심에는 “무관심”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마치 무관심한 것처럼 참견을 하지 않으셨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어디를 다녀오는지, 무얼 하고 다니는지 크게 상관을 하지 않으셨다. 한 마디로 터치를 하지 않으셨다. 실제로 아들에게 무관심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너무 궁금해서 매일 어머니에게 물으셨고, 심지어 어머니를 들볶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즉, 아들에게 간섭하고 싶은 욕망을 참으셨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그 인내를 먹고 자랐다. 덕분에 매우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래서 나도 내 자식을 그렇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초은이를 데리고 발달센터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새로운 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아내, 나, 첫째 채은이, 둘째 초은이, 이렇게 네 가족이 모두 나섰다. 상담을 잘 받고 나설 채비를 했다. 그때 선생님이 한 말씀을 하셨다.

“아~ 아버님이 아이를 잘 챙기시는구나~”

당시 우리 나이로 6살쯤 되었던 큰 딸아이의 재킷 지퍼를 채워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뭔가 뇌리를 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너무 아이를 과도하게 챙기고 있었던 것 같다. 뭐랄까… 과도한 사랑, 혹은 딸바보? 다른 말로 하면 너무 오버하는 아빠? 아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빼앗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대로 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변하려고 노력했지만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초은이가 처음 발달센터에 다닐 때였다. 초은이는 선생님과의 1 대 1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엄청나게 거부를 했다. 교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교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으니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엉엉 우는 초은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얼 얻겠다고 우리 딸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초은이에게서 기회를 빼앗을 뻔한 순간이었다. 초은이가 울고불고 힘들어도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초은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데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시도는 모두 초은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힘들다고 아빠가 대신해 주고, 우리 아이는 못할 거라며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새로운 도전이 힘들어도 그 도전을 스스로 이겨내면 아이는 다른 존재가 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옆에서 잘 지켜보지 못하는 부모가, 그 과정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부모가 바로 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많이 변했다. 첫째가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물리적 공간과 마음의 공간을 제공했다.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마냥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조언을 구할 때만 필요한 말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이가 알아서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큰 딸은 제법 스스로 하는 아이가 되었다.

막내도 겨우 다섯 살이지만 스스로 하도록 키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막내라 그런지 처음부터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게 많다. 보고 배울 사람들이 집에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첫째, 둘째는 화장실 용변 보는 것도 가르쳤던 것 같은데 막내는 그냥 알아서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막내는 더 똘똘해 보인다. 착각일까?!

자폐 아동인 초은이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물론 초은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자신을 돌보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이제 초은이는 많은 일을 스스로 한다. 물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양치질이다. 충치가 생기면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양치질은 아직도 옆에서 챙기고 있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자폐 아동의 배움에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달 연령에 따라서 이루어야 하는 발달을 최선을 다해서 따라가야 한다. 그 과정이 조금 힘들다고 부모가 지레 겁을 먹고 피하고, 대신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힘들더라도 그 과정을 반드시 해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부모가 옆에서 도와야 자폐 아동은 그 과정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글을 써보니 많이 꼬인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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